논어란 책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책도 드물지 않나 여겨집니다. 반면에 친숙하기 때문에 내용을 소상히 읽어볼 기회가 줄어든 게 또한 논어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논어에 대한 한두 구절씩 모르는 사람 별로 없겠지만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꼼꼼히 읽어본 사람 또한 드물 것입니다.
논어는 공자에 대한 행적을 단편적으로 적은 내용으로써 지은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각 편 제목도 글자 첫 구절을 따서 지었고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는 말도 나오기도 하는 왔다 갔다 하는책을 처음 접하고는 뭐 이런 시답지 않는 내용을 적어놓은 책이 다 있나 여길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학이시습 불역열호아"란 구절부터 "요왈..." 이렇게 20장으로 이루어진 논어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공자 사상과 행동 양식을 알 수 있는 공자 어록 입니다.
문학이 나오기도 하고 철학이 나오기도 하고 한같 잡답이 나오기도 하는 이 시답지(?) 않는 책이 이천 년을 이어 내려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겉만 변화를 했지 습성이 변하지 않는 관계로 이천 년 전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나 마음이 같기 때문에 이 책의 생명력이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솔직한 공자 모습도 보게 되고 어떤 대목에서는 조금 위선적인 공자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위선적으로 보인다는 말 자체가 성인인 공자를 무시하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인간적인 공자를 원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논어만 가지고 본다면 공자는 성인이고 흠결이 전혀 없는 완벽한 영어로 번역하는 perpect man입니다. 그러나 세대가 변한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공자는 입신출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어찌보면 비굴하기까지한 정치가일 뿐입니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가 욕을 안 얻어 먹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유가라는 공자 후예들은 이 비열하기도 한 정치인 공자를 비난하기는 커녕 칭찬 하기에 침이 마를 정도입니다. 백가쟁명시절 대세를 이룬 것이 법가, 묵가, 유가, 양가... 이런 파들이 거의 비슷하게 세를 얻었을 겁니다. 그런데 유가가 승리하게 된 배경에는 절대 왕조를 열렬히 지지한 왕 입맛에 이 보다 더 좋은 사상은 없었습니다.
군신과 가부장제, 이렇게 강자를 위한 위한 정치철학을 제공한 유가들이 왕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맙고 예뻤겠습니까...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이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역대 왕조들은 최선에 노력을 다 했습니다. 군사부일체를 강조하기 위해 논어를 위시한 유가 철학을 공급 발전 시키다 보니 논어란 책이 이천 년 생명을 지닐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공자를 등에 업고 논쟁을 하면 절대 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얼마나 공자 사상에 물 들었는 지 말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물론 반대 급부도 당연히 따라옵니다. 백성 보다는 왕을 위한 학문이고 여자 보다는 남자를 위한 철학이었고 약자 보다는 강자를 위한 책이었던 논어가 우리를 위시한 한문 문화권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여자와 약자들이 소외를 당했고 상명하복이라는 비인권적인 문화가 생겨났으며 왕조가 무너지면 제도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인물만 바뀐다는 사실이 어릴적부터 각인된 머리는 사고에 있어 한계로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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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아직도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디 지도 논어란 책을 본적이 없구만요.
아그님 얘기를 들으니 앞으로도 별로 읽을 일이 없을 듯싶네요~
비록 읽지는 않았지만 논어란 책에 우리는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유가에 있어 긍정적인 면이라고 생각되는 배우고 익히는 교육열... 심지어는 죽은 사람 제사 지낼 때 벼슬을 못한 사람에게는 학생부군신위라고 적기까지 하는 게 바로 유가 영향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리고 삼강오륜이라든지 하여 숨쉬는 공기처럼 우리 생활에 녹아 있다고 봐야겠지요.
별 어렵고 두꺼운 책이 아니니 한 번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여겨집니다.
생선이야기 인줄 알았구만요;; 히히;
고기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요.
특징은 우리말 보다 모음이 하나 없다는 게 일반적이지만...
잉어는 이어
붕어는 부어
숭어는 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