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관한 잡상

달 팽 이 2007/09/26 03:37 | 글쓴이: 아홉그루

제가 바둑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 15살 때였습니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매일 바둑 이야기만 하셔서 그 모습을 시샘만 하며 지켜보다가 하루는 그 바둑 어떻게 두느냐고 여쭤봤더니 한 수 지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바둑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 막내 오빠는 저보다 6점 정도 상수 셨는데 두서너 달 만에 제가 백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누우면 천장에 바둑판이 아른거리던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부에 전념하면서부터 바둑을 영 멀리하다가 고등학교에 가면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몰두를 하니 당시 친구나 주변 선후배들 사이에선 적수가 없더군요(?). 물론 중간에 고수를 만나 내기에 진 것을 치면 꽤 용돈이 들기도.....

모든 취미가 다 그렇듯이 바둑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으로 여러 가지를 꼽는데 얼핏 들으면 다 맞는 것 같지만 대부분 기원이라든가 바둑 학원 등 상업성 있는 곳에서 퍼뜨린 검증 안 된 말로 들리고 확실한 장점은 딴 취미에 비해 간단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만 있어도 되고 장소를 별로 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점으로 치자면 너무 재미있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정도입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을 보면 교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꼼수를 놓기도 하고 심리전을 펴기도 하고 엉큼한 수를 놓기도 하는 걸 보면 사람이 하는 놀이니만큼 사람 살아가는 온갖 음모가 다 들어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 교활하고 엉큼하고 사기성을 잘 동원하는 사람을 바둑을 잘 둔다고 이르고 거기에 적응이 안 돼서 어리 숙한 사람을 보고 바둑을 잘 못 둔다고 합니다.

상수와 하수가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다 보면 상수란 사람이 얼마나 교활한지 눈뜨고는 못 봐 줄 경우가 있습니다, 갖다 붙이고 끊고 꼬이고 걸려들기만 기다리는 사람으로 보여 하수가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기력 차가 나면 날수록 그 심한 정도란 게 더 커서 괜히 열심히 두는 상수가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저도 하수 만나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지만 말입니다만. 바둑이 비슷한 게임인 장기와 차이가 나는 점은 장기는 왕이란 게 있어 왕이 죽으면 게임이 끝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만 바둑은 누가 집을 더 많이 내느냐를 겨루는 게임입니다. 여러 가지 특징이 있겠지만 장기는 철저히 왕정을 묘사한 요즘 말로 하자면 내용이 비민주적인 경기로 여겨집니다. 한 번 전진하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졸, 거기에 비하면 왕궁에서 사에 의해 보호받아서 전쟁터 자체를 가지 않는 왕, 바둑은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철저한 민주적인 게임이라 여겨집니다.  누구나 어디에도 자유로이 놓일 수 있는 평등성(패라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티벳 바둑에는 이마저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조선시대 선비들은 바둑을 주로 뒀고 장기는 평민들이 많이 둔 걸로 되어 있습니다.(물론 장기가 더 구하기 쉬워서 그랬을까?) 현실을 반영하는 게 게임이고 그 정신일텐데 졸병으로 태어나 장기판처럼 평생을 졸로 산 사람들은 그렇게 당연하다 여기고 살아갔을 겁니다. 지금도 그 세뇌는 교묘한 형태로 계속 되겠지만요.

바둑 한 판을 인생에 비유한 사람도 있고 내기 바둑을 두어 패가망신한 사람도 있는 바둑, 대가댁 집안에만 있던 이 바둑이 이젠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바둑을 삼은 사람도 있습니다. 조훈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존경스럽고 이창호란 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아집니다. 어제 삼성화재 배 바둑 16강전을 한국이 대거 입상을 하여 한국 행복한 날이라고 제목을 썼습니다. 일본이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수준이 낮다고 바둑을 안 둬주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젠 도리어 우리가 일본을 보고 2부 리그라고까지 합니다. 이게 다 머리 좋고 적극적 성격을 가진 기질 탓 아닌가 여겨봅니다. 정작 원조보다 더 적극적이고 유별나게 교조적인 한국인 특정이 바둑에도 나타난 것이 아닐까 여겨봅니다.

2007/09/26 03:37 2007/09/2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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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바나나 2007/11/09 20:24 댓글 수정/삭제

      자기야 빨리 바둑 가르쳐줘!!

    2. nova 2007/11/09 20:25 댓글 수정/삭제

      헛. 저 타이젬에서 2-3단입니다. 기력이 비슷하다면 한 수. ;-)

    3. 민노씨 2007/11/09 20:29 댓글 수정/삭제

      "장기는 철저히 왕정을 묘사한 요즘 말로 하자면 내용이 비민주적인 경기로 여겨집니다. 한 번 전진하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졸, 거기에 비하면 왕궁에서 사에 의해 보호받아서 전쟁터 자체를 가지 않는 왕, 바둑은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철저한 민주적인 게임이라 여겨집니다. 누구나 어디에도 자유로이 놓일 수 있는 평등성(패라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티벳 바둑에는 이마저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조선시대 선비들은 바둑을 주로 뒀고 장기는 평민들이 많이 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위 문단은 참 인상적이네요. : )

      p.s.
      최근에 '기성 오청원 (The Go Master, 2007, 티엔 주앙주앙 )'를 봤는데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691

        아홉그루 2007/11/09 20:30 수정/삭제

        모든 게임은 인간이 처한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요. 왕조 시대였으니까 장기 같은 규칙이 나온 것도 자연스러웠을 거고 바둑은 그 이전에 인간이 우주를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나온 거라고 하니까 인간 본성에 더 잘 맞는 게임이 아니었을까 여겨질 따름입니다.

    4. 벨벳 2007/11/09 20:26 댓글 수정/삭제

      되게 어릴때부터 바둑 두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큰 맘 먹고 바둑 배웠는데요. 너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사활이 잘 안 늘더라구요. 가르쳐 주시던 사부님께서 하여간 정석이랑 집 짓는 것만 되게 좋아한다고 핀찬을 주시곤 했지요. 바둑 잘 두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넙죽.

        아홉그루 2007/11/09 20:31 수정/삭제

        조남철 선생이 하신 말이 있습니다.

        조국수님 바둑 잘 두는 비결이 있습니까?
        아마추어가 바둑 잘 두어 뭣 하실려고요, 그리고 그런 비결은 제가 배우고 싶습니다.

        이런 대화가 있었던 걸로 들었습니다.
        바둑 잘 두는 방법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사활이랑 정석을 많이 풀어보다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사활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통하는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두 점 정도 상수하고 많이 두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소줏값(?) 하고 비례가 되겠지만요.

    5. 자박 2007/11/09 20:27 댓글 수정/삭제

      바둑은 제게 춘천(도시)과도 같지요.
      춘천이란 말(발음)만 들어도 가슴 설레여서 철이 들고부터는 일부러 가지 않는 곳이거든요.
      바둑 또한 그와 같은데... 살짝 엿보고 싶기도 하지만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바둑의 오묘한 세계를 감질나게 소개해 준 아그님 글 잘 읽었습니다. 잘 두신다니 부럽기도 하구요.
      지금도 살짝 갈등이 되네요. 바둑을 배울까 말까... ^^;;

        아홉그루 2007/11/09 20:31 수정/삭제

        우리나라 도시 중에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는 춘천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춘천이란 도시와 바둑이 연계가 된다는 말씀을 들으니 상당히 로맨틱한 자박님으로 느껴지는데요. ㅎㅎ,

        바둑을 배워 보시면 또 다른 춘천들이 바둑판 안에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6. 민노씨 2007/11/09 20:29 댓글 수정/삭제

      댓글을 입력할 때 전화가 오는 바람에 미쳐 입력하지 못했나 봅니다. ^ ^;
      티엔 주앙주앙 감독은 예전에 정성일씨께서 굉장히 주목했던 감독이라서, '어둠의 경로'( ㅡㅡ;; )를 통해 '오청원'을 보게 되었는데요.

      저로선 꽤 좋더만요.
      아직 보시 않으셨다면.. 기억해두셨다가 기회가 닿으면 꼭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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