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등산을 합니다. 친구 중에서도 등산을 매우 좋아해서 이번 주에는 어느 산을 오르고 다음 주에는 또 어느 산을 오르고 이렇게 주말에 산에 가는 재미로 사는 친구도 있습니다.
등산 예찬론자인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체력을 다질 수 있어 좋고 산을 올랐을 때 그 정복감, 성취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건전(?)하고 손해 볼 게 없는 일이란 점도 누누이 강조합니다. 가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면도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친구와 등산을 안 해봤습니다. 그 친구랑 안 간 것이 아니라 산을 올라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입니다. 십여 년 전 정도에 몇 곳을 가 본 외에는 거의 산을 안 올랐습니다.
이렇게 산에 안 간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는 게으르다는(?) 것이고 다음은 어느 등반대에서 함께 등산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그들이 하는 행태를 보고는 뜨악하여 등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산에 대하여 모욕감을 주는 행동과 자연에 대한 배신행위를 보고는 정나미가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북한산에 입장료를 없애고 난 뒤 산이, 산이 아니라 북새통이 됐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북한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국 유명 산들이 다 이 지경이 됐습니다.
산에 찍힌 발자국, 곳곳에 난 등산로, 버려진 쓰레기, 산을 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편의시설 등등. 한 마디로 산이 이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몸살일 때는 병을 고치기가 쉽지만 더 발전하여 합병증까지 온다면 그야말로 구제불능인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산은 특이나 달리 놀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산을 서양 사람들처럼 정복 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숭배까진 아니더라도 아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만주족이 백두산을 성지로 여겨 산을 오를 때 요강(?)을 들고 올랐다는 말이 있는데 아주 옳은 행동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산에 산신령(?)이 산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저로서는 산에 함부로 오르는 것이 불경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체력단련을 위하여 산을 마구잡이로 오른다면 산은 남아 남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저 멀리서 성스러운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아니한가 여겨봅니다. 체력단련을 위해 산을 오른다고 하는데 체력단련에 가장 좋은 운동은 달리기로 알고 있습니다.
동네 곳곳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열심히 뛰면 산도 좋고 체력도 좋고 비용도 거의 안 들고 이보다 더 좋은 체력단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취감 정복감이라고 말 하는데 기껏 산을 올라서 얻는 성취감 정복감이 뭐 그리 대단하며 그 산을 오르는 것을 성취감 정복감이라고 말 할라치면 어디 성취감 정복감 아닌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껏 산이 이렇게 온전히 보전 될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산에 인간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산이 산으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없는 모순 덩어리인 게 딴 게 아니고 문화라는 장르를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알게 된 게 아니고 그게 본성일 테지만......,
다른 동물처럼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만사가 즐겁고 더는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은 만족 할 줄 모릅니다. (반성) 자꾸만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등산이 건전하고 훌륭한 취미라고 언론이고 책이고 떠들어 대니 모두 그런 줄 착각을 하면서 당연히 그렇게 훌륭한 행동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산에는 인간만이 사는 게 아니고 온갖 동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수 십 명이 산에 오르면 수십 년 정도가 지나야 생태계가 복원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산은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젠 산이 산일 수 있도록 제발 들어가지 말자.
그 산에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가.
이렇게 재미없는 갑남을녀가 되어 산에 떼거지로 가지 말고 딴 취미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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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심정은 이해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산에 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echo life, 자연인 우리와 자연이 교감하며 만들어가는 실재적인 삶, 을 달리기에서 찾을 수도 있겠고
다른 것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요?
빈대 하나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울수도 없고,
입산금지에 치를 떠는 사람도 있지요....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데 호탕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여러 종류가 있겠지요.
비관과 낙관파라 차이라고 해야할까요.
산..... 인간들이 이 정도면 아주 문제없고 차라리 정신과 건강을 위해 장려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지금처럼 행동했다간 산을 버리고 만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이 문제가 단순히 이 정도 시각 차이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궁금한데 입산금지에 치를 떠는 사람은 어떤 경우일까요?
산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겠지요. 아주 거대한 자연의 일부. 우리가 지붕 밑에 자리를 틀고 두다리 뻣고 누을수 있는 공간도 자연의 일부이구요. 산이든 바다든 도시든 인간의 이기심때문에 오염은 늦춰질수는 있겠으나 막을수는 없는 존재인거 같아요. 아홉그루님은 그중 특히나 산을 사랑하는군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잘보고갑니다.(^^)
늦춰질 수 있으나 막을 수 없다......
크게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자연이 수 백만 년 동안 있어왔듯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조금만 자제를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고 싶습니다.
기분 좋을 때나 우울할 때 음악을 듣는 것처럼 산을 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그저 그 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속세에서 욕심내고, 조바심내고 안타까워했던 것들이 드없이 큰 숲 안에서는 사라진다고나 할까요. 한없이 부족한 인간에게 자연이 큰 가르침을 주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 이유로 산을 찾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이기심인 것은 인정합니다. 훼손은 당연 말아야겠죠^^
아홉그루님의 산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애정은 잘 알겠습니만, 혼자서도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기는 저는 재미없는 갑남을녀가 되어 떼거지로 가지 않으니 산에 올라도 되겠습니까? 산은 저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좋은 동무거든요.
약간 빗나가는 글이지만 트랙백 보냅니다. 산이 주는 가르침인 것도 같아서요. 적어도 제게는..
산을 오르는 이유야 수없이 많이 있겠지요.
우울하고 위로받고 싶을 때도 있고 건강이 목적인 사람도 있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분도 있고......,
각자 다 다른 목적으로 산을 오를 겁니다.
그런데 산은 일정 정도는(그 일정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릅니다) 산이 포용을 하겠지만 도를 넘었을 때는 문제가 된다고 여겨집니다.
지금 사람들 행동을 보면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생각이 나는군요.
이런저런 인간 이기심 때문에 산 자체가 망가져서 그냥 단순한 흙더미로 남을까 염려된 마음에 평소 생각을 말한 겁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마음을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산에 사는 산신령이 한번 노를 발해야 정신들을 차리겠지요^^;
산신령님께서 워낙 너그러운 분이시지만 이젠 노여워 하실 때가 왔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요.
가끔씩 가볍게 주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에 산신령이 있다는 증거.
1.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2. 얼마 전에 백두산에 올랐다가 강풍에 날아가 등산객이 죽음.
3. 매우 높은 산에서 동상 걸려 죽고 조난 당해 죽는 경우.
4. 가깝고 낮은 산에서 실족사 하는 경우.
5. 여름철에 갑자기 폭우가 내리는 경우.
6. 메아리.
등등...
그 외에도 다수 증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