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록 특별해 지는 사랑...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 - Beck
자신은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조엘(짐캐리)은 출근하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는 중
돌연 몬타우크 해변으로 가는 열차를 탑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모래는 과대평가되고 있다 조그만 돌덩이들에 불과한데' 라며 좋은 곳에 오고선 투덜거립니다.
대체 무슨 말이지? 영화 보는 내내 의문을 갖게합니다.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은 처자를 본 조엘은 새로 누군가를 사귈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자의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는 자신의 상태로봐선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체념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아까 본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은 처자와 우연히도 같이 타게됩니다.
웬 횡재인지 이 처자가 말을 건내며 살답게 다가옵니다.
중고등학교 음악책에서나 등장하는줄 알았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이 처자가 싫지 않습니다.
가까와진 그들은 춥지도 않는지, 한밤에 얼어붙은 찰스강에 누워 말도 안되는 별자리 얘기로 짜증나는 염장을 쏟아냅니다.
"옆으로 가고 가로지르고 이건 오시디우스 자리야" 뷃!!
클레멘타인을 집에 바래다주고 다시 나오기를 기달리던 조엘앞에 홀연이 나타난 호빗은
걱정스런 얼굴로 "도와드릴까요"라고 뜬금없이 묻고는 홀연히 사라집니다.
호빗의 이 뜬금없는 행동은 인간계에서 적응을 못한 까닭일까요?

다음 장면, 눈물을 흘리며 차을 몰고 있는 조엘을 보여주며 오프닝 크레딧이 뜹니다. 이어 벡(Beck)의 멋진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느닷없는 장면에 잠시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나 곧, 이들은 헤어졌고 클레멘타인이 조엘과 함께한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클레멘타인이 자기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은 알게된 조엘은 격분하여 자신또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고자 합니다. 잠든 사이에 아픈 기억은 싹 지워지고, 일어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니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에겐 매혹적인 유혹입니다.
여기까지 이 영화는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라는 메인카피의 내용대로, 이들은 다시
사랑을 하게되고 아픈 사랑의 기억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그런 영화구나라고 예상케합니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편한 마음으로 조엘의 추억을 보며 이 영활 즐길 준비를 합니다.
사랑을 하게되고 아픈 사랑의 기억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그런 영화구나라고 예상케합니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편한 마음으로 조엘의 추억을 보며 이 영활 즐길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조엘이 기억하고 있는 클레멘타인과의 첫 만남은 앞서 보았던 장면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부분적으로 역순으로 구성이 되어있었던 것 입니다. 클레멘타인과의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는 이 작업은
예상과는 달리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할애합니다.
부분적으로 역순으로 구성이 되어있었던 것 입니다. 클레멘타인과의 가까운 기억부터 지워는 이 작업은
예상과는 달리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할애합니다.
이 작업이 점점 길어질수록 과연 사랑에 관한 이야긴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기억에 관한 이야기일까요? 왜 부분적 역순의 구성으로 이뤄졌을까요 다시 혼란스러워집니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소중함을 알게되어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막고자 잠에서 깨어날려고 합니다. 그러나 닥터 하워드와 메리에 의해 기억이 지워질 것을 강요 받으며 다시 깊은잠에 빠져들게 됩니다.'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는 니첼의 잠언을 좋아하는 메리와 닥터 하워드는 이 영화에 또다른 클레멘타인과 조엘입니다. 기억을 지운자와 기억을 간직한 자로 이루워진 기억에 천착하는 이 커플은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기억이란 놈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나 봅니다. 지운자와 간직한 자 모두 고통스러우니 말이죠.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고자 했으나 점점 사라져가는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소중함을 알게되어
이젠 기억을 도히려 붙잡으려 했습니다. 기억을 버리려는 행위와 기억을 소유하려는 행위 이것은 기억에
대한 집착인것입니다. 기억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조엘은 그 어느 행위를 하더라도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조엘 이것도 곧 사라지게 될거야"
"알아"
"어떡하지?"
"즐겨야지"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한 조엘은 이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을 즐기기로 합니다.
기억의 집착에서 벗어나 순간순간의 행위 자체의 의미를 부여하는것입니다. 이로써 조엘은 잠에서 깰 수 있게 됩니다.
조엘이 모래는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돌멩이가 힘에의 의지가 없어서 모래로 되었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영원히 부딪치는 파도라는 고통에 돌멩이는 그 고통을 피하고자 모래가 되었습니다. 즉, 이건 조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래는 언젠가는 다시 돌멩이가 되어 파도라는 고통을 다시 마주칠것입니다. 더 나은 미래는 없고 현재는 반복되는 영겁회귀에 의해서..
하지만, 고통어린 반복되는 순간순간 또한 의미를 부여하고 즐길수 있을때
"아픈 사랑이여 다시한번을" 외치면 영겁회귀는 단순히 반복되는 고통스러움만은 아니게 될 것 입니다.
이건 데쟈뷰라고 외치던 조엘, 닥터 하워드와 메리의 반복되는 관계, 이 영화의 구성과 엔딩 등 영겁회귀를 암시하는 부분은 몇 번 나옵니다.
파도치는 몬타우트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즐거운 모습을 비추며 이 영화는 끝이납니다. 그렇지만 망각이라는 자기극복을 할 때에만 이들에게 복이 갈 것 입니다. 해피엔딩을 바라며..














영화도 영화지만 벡은 굉장하구만요~
이 글을 놓쳤었군요. ^ ^
저도 꽤나 인상적으로 본 영화라서 이 글을 읽으니 영화의 잔상들이 문득 문득 흘러가네요.
케이트 윈슬렛 그다지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었는데, 이 영화 보고 나서 꽤 좋은 배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p.s.
니체가 공통 매개였군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저도 트랙백 보낼게요. : )
동양엔 주성치 대협! 서양엔 짐 캐리~
짐 캐리빠여서 나온 영화는 거의 다 봤을 듯싶구만요.
저도 느끼는게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짐캐리의 새로운 면도 느껴졌었던것같고.. 글이 쏙쏙 머리에 남게 좋으네요 :)
별 내용 없는 글인디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요즘은 짐 캐리가 단순한 코미디 배우가 아닌 듯싶구만유~